
1980년대 말, 영국 런던에서 형성된 애시드 재즈(acid jazz)는 1988년 이른바 '제2의 사랑의 여름(Second Summer Of Love)'이 몰고 온 레이브(rave) 폭발과 함께 탄생한 신(新)조류이다. 대규모 야외 춤판 문화를 가리킨 레이브를 음악적으로 대변한 것이 바로 애시드 하우스(acid house)였다. 당시 애시드 하우스의 위력적인 부상으로, 이를 제외한 딴 댄스음악 스타일들은 도태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갑작스레 길거리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된 DJ들은 생존을 위해 음악적 탈출구를 모색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들은 이 무렵 젊은이들 사이에서 환영을 받은 힙합(hip-hop)과 펑크(funk), 재즈(jazz)등의 다양한 장르들을 한데 섞으려는 공통된 지향을 공유하며 활발한 상호 교류를 시도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애시드 재즈가 생성했다. 어원 그대로 풀이하면 애시드는 약물을 가리키므로 '마약 분위기의 재즈'가 된다. 라이브 재즈 혹은 재즈 샘플과 힙합 브레이크 비트를 결합하여 마치 흐느적거리는 듯한 춤을 유발하는(그래서 '약에 절은' 듯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분위기는 다분히 몽환적이고 이 몽환적 무드야말로 애시스 재즈의 핵심이다.
이런 음악은 기성세대가 참여하는 국민음악이 되지 못한다. 나이든 사람들은 관습과 주정(主情)성을 따르지 새로운 것 더욱이나 뒤틀린 것, 불길한 것 그러면서도 어떤 이성적 지향이 스며든 주의(主意)에 미소짓기 힘들다. 어디까지나 신(新)트렌드에 민감하고, 더욱이 그것이 어른들의 시선이나 기존 형식에 마찰을 일으키는 은근한 반란을 도모할 때 더 쾌감을 느끼는, '비틀거리는 게 좋은' 신세대들의 것이다. 그들은 애시드 재즈와 같은 음악이 제공하는 반복 비트의 질적 이완, 살포시 감싸는 불안감에 끌린다. 말하자면 비주류 청년들의 '안전지대' 정도 되는 셈이다.
하지만 적어도 1990년대 영미에서 신세대를 습격한 무수한 장르들이 대부분 비주류임을 감안할 때 그것이 결코 소외된 음악이라고는 할 수 없다. '비주류로서 대중전선 형성', 이것이 1990년대 음악(우리나라는 아니지만)의 한 단면이고 애시드 재즈도 무시할 수 없는 흐름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저 멀리 거슬러 올라가면 1960년대 그룹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Sly And The Family Stone)을 원류(原流)로 하는 사이키델릭 펑크(psychedelic funk)의 흔적도 도처에 묻어있다. 당시 애시드 재즈(Acid Jazz) 레이블과 토킹 라우드(Talkin' Loud) 레이블을 설립하며 애시드 재즈의 보급에 앞장섰던 선구자 자일스 피터슨(Gilles Peterson)의 작업들을 들어보면 단번에 감이 잡힌다.
이 외에 갈리아노(Galliano), 그루브 콜렉티브(Groove Collective), 스테레오 엠씨스(Stereo MC's)등이 그 세(勢)를 견인했고 현재에는 자미로콰이(Jamiroquai)가 상위 랭커로서 맹활약중이다. 상기 나열된 그룹을 통해 애시드 재즈는 다시금 펑키한 리듬, 힙합적 요소에 클럽 언더그라운드문화의 특질인 약물(적) 분위기가 혼합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재즈 펑크(Jazz funk)란 말과 멀리 있지 않다. 국내에선 롤러코스터(Rollercoaster)가 애시드 팝 혹은 애시드 재즈 밴드로 일컬어지면서, 우리 음악계에도 최근 이 장르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있다.
1990년대 초에는 대서양을 횡단, 미국에서 1994년 'Cantaloop'라는 히트곡을 낸 어스3(Us3) 등과 함께 국제적 인지도를 획득하기도 했지만 이후 애시드 재즈는 급속히 붕괴되는 비운을 맛보았다. 당시 클럽형 댄스 음악이 모두 애시드 재즈라고 불릴 정도로 언론에 의해 갑작스레 부풀려지는 작위적인 냄새가 짙었고, 음악인들 사이에 공통 분모를 찾아내는 것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뮤지션들 역시 자신들을 하나의 특정범주로 묶어버리는 일반화에 대해 반감을 표시하곤 했다. (일례로 자일스 피터슨과 자미로콰이의 음악 사이에는 희미하게 감지되는 공약수만큼이나 엄청난 갭이 존재한다.) 그 결과, 다수의 DJ들이 서서히 수면 위로 부상 중이었던 정글(jungle)등 사뭇 종류가 다른 하드코어 테크노 등으로 방향타를 틀며 새로운 음악 둥지로 이전해버렸다.
이렇듯 음악잡지들에 의해 주도된 과장(media hype)에 지나지 않았다는 혐의에도 불구하고 애시드 재즈는 대중음악 역사에서 나름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것으로 평가받는다. 젊은이들의 해방구인 댄스 클럽 씬에 다양성의 숨결을 불어넣었으며 자신은 무대 뒤로 퇴장하는 대신 1994년경에 방계로 부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트립합(trip-hop)에게 음악적 동위 원소를 유전해주며 후계자(?) 양성에도 성공했다는 찬사를 받았다.
글은 인터넷에서 자신을 나타내는 유일한 모습입니다.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보다 같이 즐거워 할 수 있는 코멘트 부탁드립니다.
추천누르고 댓글 달아주시는 매너....


